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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월) 02:57 PM

역대선교사

1960~1970
라서다

F.C. Lasater
  • 1965년 8월 ~ 198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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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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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C. 라서다 목사는 1927년 7월 30일 텍사스에서 나셨고, 부인되시는 메리 죠는 1929년 10월 27일생이시다. 두 분은 1947년 8월 3일 18살의 나이에 결혼하셔서 슬하에 4남매(Cobb, Debbie, Brenda and Bobby)를 두셨다.
그중 맏 따님이시 대비(Dabbie)는 수년간 주한 선교사였던 미즈 선교사의 사모가 되었고, 막내 바비(Bobby)는 아버지를 이어 주한 선교사로 수고하기도 했다.
라서다 목사는 스프링필드에 있는 성서침례신학대학에 재학 중 사역에 대한 열정과 구령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학교를 다 마치기도 전에 사역에 임하여 16년간 목회를 하셨다. 한국 성서침례신학교 학장으로 계시는 동안 조급함 때문에 신학을 마치지 못한 후회를 비치시기도 했다.
“1964년 11월 한국 선교사로 인준을 받고, 1965년 8월 부산항을 통해 한국 선교사의 첫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그 때의 감격과 기대를 잊을 수가 없었고, 우리가족에겐 보람된 기간이었다.
당시 선교사로 먼저와 계시던 알톤 차일스(Alton Chiles)선교사가 마중을 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빗속에 밀양에서 열리고 있던 전국 청년수양회(Youth Camp)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한국 사역을 시작했다. 그 때 첫 통역은 추인호 형제였다.
1965년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만 22년간의 한국 사역을 통해 초기 성서침례교회 발전을 위해 친교회장과 후원하는 선교사로 힘썼고, 한국성서침례신학교의 학장으로 목동캠퍼스시대를 거쳐 이천 캠퍼스시대에 이르는 동안 친교회 목회자 양성을 위해 일익을 감당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생애 큰 보람이었다. 유지재단 설립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의 생애에 큰 보람은 사역을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고, 목회자의 사모가 된 것이다.
그들이 한국 전역에 성경 중심의 견고한 교회들을 세워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에겐 말 할수 없는 자랑거리였다.
이 지면을 통해 한국의 동역자들께 감사를 전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더 위대한 일드을 이루시기를 기도드린다.”
라서다 목사는 1987년 한국 선교사역을 마치고 미국 성서침례친교회 국제 선교본부(BBFI, World Missions, Springfield, MO) 부총무로 사역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근교에서 목회하시면서 만년을 보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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